‘모를 때나 알 때나 나를 이끄신 주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외대 BCM소속 문정빈입니다. 제가 BCM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어 영접 기도를 올린지 9개월,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됨을 진심으로 선포한지는 8개월, 교회에 소속된지는 2개월이 되었습니다.
모태신앙도 아니고 무교 집안에 뼛속까지 반기독교인, 유물론자, 자기중심적이었던 제가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종교에 관심을 갖고 있던 와중에 제가 갖던 소모임 소속 학우분께서 저를 BCM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전도사님과 형제 자매님들 덕분에 저의 마음이 열렸고,
이근영 선교사님과의 만남과 선교사님의 인도 아래 드렸던 영접 기도로 저와 주님의 연결됨을 인식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저의 믿음에 불을 지폈던 한마디는 “예수님은 모두를 사랑합니다.” 입니다.
제가 아르바이트 하는 학원에서 같이 일하는 분들 중에는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신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선생님께서 따로 시간을 내어 카페에서 이 말씀을 해주셨을 때 “난 언제 사랑을 받았지?” 라는 질문을 제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당장 교회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온몸을 지배했습니다.
손은 이미 핸드폰으로 교회 가는 길을 찾고 있었고, 카페 앞 정류장에서 교회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도착 1분 전이었습니다.
“저는 이 길이 주님의 이끄시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급하게 선생님께 감사함을 표하고 교회로 이동하였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찬양을 들으면서 저의 인생을 돌아보며 주님이 주셨던 사랑의 흔적들을 처음부터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간절하게 신을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21살, 저희 어머니가 뇌경색, 뇌출혈이 동시에 발생하여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였습니다.
제가 확정된 군입대 날짜를 가정사로 미룬 그 시기, 제가 입대했다면 집에 어머니만 혼자 계시는 시간에 어머니가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119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검사 결과 없이 수용이 불가능하여 도로를 방황하는 와중에, 다행히 한 병원에서 하루 정도 걸리는 코로나 검사 없이 환자 수용이 가능한 병실이 한 자리가 남아서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의식 없는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계시고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 저는 처음으로 신을 찾게 되었습니다. ‘정말 존재한다면 이번 한번만 엄마를 살려주세요. 그렇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신의 존재를 믿겠습니다.’
놀랍게도 신은 저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어머니는 별일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셨을 때 저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으로도 눈물을 흘릴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시술을 받고 어머니는 아무 탈 없이 일어나셨고, 지금도 제가 찾아가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잔소리 폭탄을 놓아주십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급한불이 꺼진 뒤 저는 신에 대한 맹세를 잊고 살았습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믿었거든요. 그런 저를 신은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군대에서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쓰러졌었는데 깨어났을 땐 몸 한쪽이 말을 안 들었고 온 몸에 식은 땀이 났고 멀미가 심했습니다. 간부님 인솔하에 군 병원에 찾아갔을 때,
저의 증상을 말씀드리니 군의관은 제가 가족력으로 뇌경색이 의심된다며 민간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게 했습니다.
검사결과는 ‘이상 없음’이었습니다. 병원에 누워있으니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식은 땀으로 젖어 있던 육체에 점점 생기가 불어왔습니다. 제가 쓰러진 것은 그저 해프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주님이 약속을 져버리린 저도 다시 살리신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주님만이 구사하시는 무한하고 일방적이고 조건없는 형태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앞선 이야기처럼 결정적인 순간에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을 붙여주고 계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제 인생을 중학교, 고등학교, 군대, 대학교로 나누어 각각 얽히고 설킨 시기를 풀어주신 분들을 key man이라고 이름 붙이고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모두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우연이었습니다. 이것을 결정적으로, 감동이 몰려왔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내 인생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보살핌이 조용히 저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찾아오신 타이밍마저 완벽했습니다.
저는 종교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가장 힘들 때 영악하게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반증하듯 주님은 제가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울 때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인생은 제가 설계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손해사정사라는 시험에 합격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을 설계하였고 제일 걱정되었던 진로 고민을 내려놓았습니다.
큰 짐을 내려놓고 제가 조금 여유로운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올해의 그 날, 원띵 채플(예배당)에서 주님이 제게 찾아오셨습니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고, 나의 인생은 내가 설계하는 것이라는 건방진 생각을 하는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종교는 영악하다는 편견을 가진 저마저도 아주 작정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여 주님의 길로 인도하심에 감사하였습니다.
걸어가든, 뛰어가든, 쉬었다 가든, 급히 가든, 돌아가든, 어디로 가든 함께하는 주와의 동행. 그것 하나만으로 이곳이 천국이 됨을 믿습니다.
이 짧고 하찮은 인생의 에피소드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제 인생에 어떤 놀라운 순간을 선물하실지, 어떤 그 다음 장면을 보여주실지, 그 끝에는 어떤 결말을 예비해두셨을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지평선 너머에서 주님이 준비하시는 하루하루를 기대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애초에 저는 군대에서 쓰러졌을 때 죽었고 이후의 삶은 제게 허락된 ‘덤’이자 주의 ‘사랑’으로 여기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습니다.


